Camino del Norte: 16. Columbres - Llanes
2025년 5월 26일(월)
도보 구간: Colombres - El Peral - La Franca - 해안길 - Pendueles - Vidiago Puertas de Vidiago - Andrin - (정규길, Ballota 해안쪽) - Cué - Llanes, 23 Km
걸린 시간: 7시간
날씨: 비, 흐림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많이 내린다. 알베르게 앞에 있는 큰 산이 사라졌다. 아래층으로 내려가 아침을 먹은 후 기부금통에 숙박비와 식사비를 넣은 후 배낭을 챙겨 숙소를 나왔다.
길을 걷다 보니 남편과 사별 후 온라인상에서 만난 남친과 카미노 북쪽길을 걸으러 온 독일 순례자가 앞에 가고 있다. 어제 저녁, 말로만 듣던 만남을 바로 앞에서 마주치니 흥미로웠다. 나이 든 할머니가 남친 앞에서 너무 행복하다고 얘기하는 모습이 정말 행복해 보인다. 그런데 이 남친은 샤워 후 주요 부위만 가리고 알몸으로 나와 마주칠 때마다 불편했다. 참 특이한 습관이다.
독일 순례자와 잘 걸으라는 인사를 하고 헤어지고 길을 걷다 어제 만나 게르하르트를 만났다. 그는 연금 생활자인데, 저울 관련 회사에 다닐 때 기술 전수를 하러 북한에 2주 다녀온 적이 있단다. 2주간의 북한 생활이 어땠냐고 물으니 자유롭지 않아서 불편했단다. 커피를 마시며 쉬고 싶어하는 게르하르트와는 La Franca까지 같이 걷고 헤어졌다.
바를 지나며 보니 루이시와 쉬본도 식사를 하고 있다. 오늘 저녁에 같은 숙소에서 만날테니 이들과는 서로 눈 인사만 하고 헤어졌다. 어제는 내가 잔 알베르게에서 배낭 수송 서비스로 보내는 배낭을 안 받아줘서 이 순례자들은 다른 숙소에서 잤다.
해안가로 나가려면 철길을 건너 좁은 통로를 통과해야 한다. 목장지대라 가축들을 보호하는 철조망이 쳐져 있어 사람들은 나무로 만든 사다리를 넘어야 한다. 그런데 비가 와서 미끄럽다. 그래도 멋진 해안 풍경을 보고 싶어 조심해서 넘었다. 드넓은 해안 목장에는 따로 길이 없다. 각자 원하는 곳으로 걸으면 된다. 벌써 부지런한 한 순례자가 해안가에 서 있는 게 보인다. 나도 해안가 끝까지 걸어갔다. 비가 내리고 있는데도 풍경은 정말 멋지다. 해안가로 걷는 길은 키 작은 가시나무들이 자라고 있어 편하지는 않았지만 자연 상태가 잘 보존되어 있어 좋았다. 충분히 해안길을 걸은 후 나가는 길도 어렵지 않게 잘 찾을 수 있었다.
길을 가다 문 닫힌 식당 앞 의자에 앉아 점심 휴식을 하고 있는 Levis를 다시 만났다. 바에서 쉬고 있을 때 자기는 더 가겠다고 하더니 점심 때가 되어도 문 여는 식당이 없으니 힘이 들었나보다. 문 닫힌 식당 앞 의자에 앉아 비를 피하며 점심 휴식을 하고 있다. 미국인인 Levis는 부산에서 2년 동안 영어학원 선생으로 일한 경험이 있고 한국 농촌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썼단다. 그는 직장을 구하고 있는 중에 북쪽길과 프리미티보 갈을 걸으러 왔다.
바요타 해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눈에 담고 있는데 Levis가 올라 온다. 나는 카미노 정규 코스인 해안길로, 그는 골프장을 따라 걷는 대체길을 선택해서 걸었다.
Cué에 도착했는데 너무 힘들다. 시계를 보니 오후 1시 20분이다. 마침 동네 손님들로 북적거리는 바 "Sidreria La Espuela"에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다. 밖에 앉으려고 했는데 담배 냄새가 너무 난다. 할 수 없이 안으로 들어가니 나무다리를 건널 때 잠시 만났던 중국 청년이 점심을 먹고 있다. 눈 인사를 하고 앉아 아스투리아스 지방 음식인 파바다를 시켜서 먹었는데 순대와 돼지고기를 넣어 만든 콩요리 맛이 괜찮다. 특히 안에 들어 있는 순대 맛이 일품이다. 그런데 순대 양은 적고 대부분 콩이다. 투박하고 커다란 질그릇에 담아서 나온 파바다의 양이 너무 많아 아쉽게도 다 먹지 못했다. 나중에 검색해 보니 여기 맛집이다.
뜨끈한 파바다를 먹으며 빗길에 추웠던 몸이 풀리고 있는데 파바다 한 그릇을 다 먹고 일어나던 중국 순례자가 내게로 와서는 자기는 오늘 야네스까지 걷고 마드리드로 돌아간다고 인사를 한다. 바르셀로나에서 공부를 했고 마드리드에서 직장을 다녀 휴가 중에 산탄데르부터 야네스까지 걸으러 왔단다. 기본적인 한국어를 구사하는 이 청년에게 한국말을 어디서 배웠냐고 물으니 한국 드라마를 보며 배웠다고 한다. 길에서 가끔 만나면 유쾌하게 한국어로 인사를 해서 외국 순례자들은 이 청년이 한국인인줄 알았단다. 길에서는 자기 얘기를 전혀 안 하더니 갑자기 자기를 소개해서 조금 놀랬다. 이 청년과는 야네스까지 잘 걷고 안전하게 돌아가라고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하루종일 내리던 비는 야네스로 들어오니 그쳤다. 야네스는 생각했던 것보다 큰 도시다. 저제 저녁, 멕시코 순례자가 왜 야네스에 가서 치료를 받는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Feve역사 바로 옆에 있는 알베르게는 구 기차역사를 개조해서 만든 숙소인데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고 호스피탈레로도 친절하다. 방을 배정 받아 들어가니 부지런한 순례자 몇 명이 벌써 짐을 풀고 나갔다.
저녁거리를 사러 근처 슈퍼에 다녀오니 바요타 해변에서 헤어진 리바이스도 같은 방에 들어와 있다. 닭날개 조림을 해서 저녁을 먹었는데 양이 많아 리바이스에게 나누어 주니 좋아한다. 한국에 산 경험이 있어 한국 음식이 낯설지 않은 가보다. 조금 있으니 한 여성 순례자가 장을 잔뜩 봐서 들어온다. 20인분의 닭스프를 끓일 거란다. 누구를 위한 거냐고 물으니 누구나 먹을 수 있게 끓이는 거란다. 덕분에 다음 날 아침에 나도 한그릇 먹었는데 맛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