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21일(금)
도보 구간: Tence – Saint-Julien-Chapteuil, 27 Km (실제 걸은 거리: 32 Km)
걸린 시간: 7 시간
밤새도록 비가 세차게 내렸다. 텐트 위로 비 내리치는 소리가 너무 시끄럽고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자는 데도 습해서 잠을 깊이 잘 수가 없었다. 다행히 아침에는 비가 그쳤고 기온은 어제보다 서늘하고 하늘은 잔뜩 흐려 있다.
캠핑장 식당으로 가서 카타리나와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데 다비드가 일어 나지 않는다. 카타리나가 웃으며 니 아들 깨우라고 농담을 한다. 다비드 텐드로 가서 일어나라고 하니 곧 밥을 먹으러 내려 온다.
오늘 아침은 어제 저녁에 슈퍼에서 산 음식으로 밥상을 차려 소박하지만 그래도 있을 건 다 있다. 우선 각자 칼과 숟가락은 기본으로 가지고 다니니 별 문제가 없다. 그런데 나무 탁자 위에 빵을 올려 놓을 접시가 없다. 그래서 얼른 텐트로 가서 휴대용 크린백을 가져와 접시 대용으로 비닐을 하나씩 깔아주었다. 카타리나는 기발한 생각이라며 오늘 아침은 아주 특별하단다.
한국을 떠나며 늘 넉넉하게 가지고 다니던 커피와 차를 무겁다고 다 두고 비상용으로 카누 커피와 홍차, 그리고 녹차를 각각 한 개씩 들고 왔는데 이걸 오늘 아침에 꺼내서 취향대로 다비드는 커피를, 카타리나는 홍차를 그리고 나는 녹차를 마셨다.
아침을 먹고 캠핑장을 떠나는데 약간 어지럼증이 있어 몸 상태가 안 좋다고 두 사람에 알렸다. 카미노 길로 들어 서서 조금 지나 다비드가 사진을 찍는다고 길을 건너고 카타리나와 함께 길을 걸어가는데 갑자기 어지럽더니 내 몸이 저절로 왼쪽으로 몇 발자국 걸어 간다. 나는 너무 놀라 소리를 지르며 스틱으로 중심을 잡고 겨우 멈춰 섰다. 카타리나도 걱정이 되고 놀라서 좀 쉬었다 가야 하지 않겠냐고 묻는다. 아마도 아침에 조금 먹은 빵이 체한 것 같다. 가만히 서서 진정을 하고 나니 걸을 수 있을 것 같아 뒤따라 갈테니 두 사람에게 앞서 걸으라고 했다. 이 때부터는 몸의 중심이 흐트러질까봐 집중하고 걷느라 주변 풍경을 볼 겨를이 없다. 그래도 옆에 의사가 있으니 안심이 되고 또 감사하다.
Araules에서 벤치에 앉아 함께 점심을 먹고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 길을 떠났다. 다양한 야생화가 흐트러지게 피어 있는 멋진 숲길과 들판을 걸으면서도 비도 오고 리딩하는 사람의 뒤를 따라 걷느라 아쉽게도 즐길 겨를이 없다. 나중에 카타리나도 같은 얘기를 했다.
Le Coudert에 도착하니 화장실이 있다. 잠시 쉬는데 비가 강하게 내리기 시작한다. 판쵸를 입은 후 카타리나와 내가 주상절리가 마을 한 가운데 있는 Queyrières 마을에 들렸다 가고 싶다니 다비드도 동행을 한다. 마을로 들어가 교회에 잠깐 들어가 앉았다 나왔다. 주상절리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지만 비가 와서 미끄러질까봐 지나쳐 다시 까미노 길로 나왔다.
고맙게도 두 사람이 서로 교대하며 리딩을 하면서 내 속도와 상태를 배려해 가면서 함께 걸어 주어 27 Km를 무사히 잘 걷고 Saint-Julien-Chapteuil에 도착했다. 우리가 예약한 숙소를 찾는데 동네 사람들과 학생, 선생님에게 물어도 아는 사람이 없다. 20분 정도 헤매다 인터넷이 잡히는 지역으로 가서 구글 지도를 보고야 숙소를 찾아 갔다.
주인이 알려 준대로 우체통에서 집 열쇠를 꺼내고 우리 숙소에 들어가니 이곳도 우리에게는 천국이다. 다비드는 혼자 방을 쓰고 우리 방에는 더블과 싱글 침대가 하나씩 있는데 카타리나가 싱글 침대를 쓰겠다고 해서 각자의 침대 옆에 짐을 풀었다.
식당으로 가니 우리가 먹을 저녁이 준비되어 있고 저녁 먹을 시간에 우리가 데워 먹으면 된다. 간식으로 우리가 먹을 살구와 천도 복숭아, 그리고 음료도 준비되어 있고 모든 것이 완벽하다.
모두들 샤워를 하고 나서는 빨래할 옷을 모아 세탁기를 돌렸다. 해가 나서 빨래는 밖에 널어 놓고 빗길을 걷느라 피곤했는지 다들 골아 떨어졌다. 식당에 혼자 앉아 발바닥 물집을 치료하고 자려고 하는데 딸아이에게 안부 전화가 와서 한참 동안 수다를 떨고 나서 나도 낮잠을 잤다.
잠결에 숙소 주인이 들어 오는 소리가 들리고 다비드가 일어나 주인에게 낼 아침 식사시간과 마실 음료를 얘기해 주는 소리를 듣고도 몸이 일어나 지지 않는다. 저녁 7시경, 카타리나가 부엌 가스 불을 어떻게 켜는지 내게 묻는다. 나는 그제서야 일어나 같이 음식을 데우고 식탁을 차렸다.
그런데 천둥이 치고 바람이 부는 게 날씨가 심상찮다. 저녁 식사 중 갑자기 소나기가 와 다들 놀라 밖으로 나가 비를 맞으며 빨래를 걷어와 각자의 방에 던져 놓고 다시 식탁에 모였다. 채식주의자인 다비드가 숙소를 예약할 때 채식주의자가 한 명 있다는 얘기를 안 하고 나중에 연락을 해서 불쌍하게도 오늘 저녁은 양파를 넣고 만든 국수와 샐러드만 먹어야 한다. 물론 치즈는 나중에 나온다. 그래도 그는 Les Setoux에서 먹은 계란 후라이 5개보다 좋다며 저녁 식사를 즐겼다.
다비드는 무거운 배낭 때문에 피곤하다며 일찍 자러 들어 갔고, 카타리나와 둘이 와인을 마시며 저녁 시간을 보냈다. 카타리나도 자러 들어 간 후, 나는 낮에 치료한 물집이 다시 부풀어 올라 물집을 터트리고 소독을 하고 물집 위에 바른 요오드 용액이 마른 다음에야 자러 갔다.
내일이면 드디어 Via Gebennensis 까미노길의 마지막 목적지인 르쀠 엉벨레에 도착한다. 제네바에서 시작할 때는 아득했는데 이제 르쀠까지 18 Km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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