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19일(수)
도보 구간: Bourg-Argental – Les Setoux, 17.9 Km (실제 걸은 거리: 22 Km)
걸린 시간: 5시간
어젯 저녁식사 때, 오늘 아침 7시 반에 헬렌이 보는 아이들이 온다고 해서 아침 식사는 7시 15분에 하기로 했다. 아침을 먹으러 옆 건물로 건너가니 한 젊은 남자가 인사를 한다. 처음 보는 사람이지만 인사를 하니 일단 나도 ‘봉쥬흐’하고 인사를 했다. 아이를 맡기러 온 부모인 줄 알았는데 간 다음에 물어 보니 헬렌의 아들이다. 식사 중에 폴이 다비드에게 줄 바게트 빵을 자르면서 ‘꼬망’하고 묻는다. 발음이 재미있게 들려 다비드에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니 이 만큼(like this)이라는 방언이란다. 이 단어는 내게 우리의 꼬막을 연상시켜 나중에도 자주 써 먹었다.
아침을 먹고 우리 숙소로 건너 오면서 다비드는 어젯밤 잠을 설쳐서 피곤하단다. 100년 전 화장실에서 격렬한 싸움이 있었는지 밤새 뒤숭숭한 꿈을 꾸었다고 한다. 어젯밤 잘 때는 침대 매트리스가 좋다고 하며 창가의 침대를 골랐는데 신경이 예민해서 그런가 보다. 반면 나는 아무 문제 없이 잘 잤다.
아침은 일찍 먹었지만 대부분의 상점이 9시에 여니 느긋하게 짐을 챙겨 8시 30분에 숙소를 나왔다. Bourg-Argental 마을로 가서 먼저 교회에 들러 기도를 하고 나오니 몇몇 순례자들이 길을 떠나는 것이 보인다. 다비드는 그 중 한 젊은 여자 순례자가 시몬느라고 알려 준다. 길 건너 ‘카지노’ 슈퍼에 들어가 필요한 식품을 사고 100유로를 내니 아침이라 잔돈이 없어서 물건을 살 수 없단다. 어제 작은 돈이 없어서 다비드에게 숙박비를 내느라 20유로를 빌려서 오늘 꼭 100유로나 200유로 지폐를 바꾸어야 하는 데 난감하다. 지갑을 뒤지니 다행히 10 유로 지폐 한 장이 있어 햄과 방울 토마토를 샀다.
슈퍼를 나와 100유로 지폐를 바꾸기 위해 약국으로 갔다. 물집 방지 크림과 다비드가 필요한 치약의 비용이 15 유로 정도 된다. 계산을 하려고 100유로 지폐를 내니 거스름 돈이 없어서 물건을 살 수 없단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다비드가 치약값을 내고 치약만 사고 나왔다. 이번에는 은행으로 갔다. 마침 창구에 손님이 있어 5분 정도 기다려 100유로 지폐를 작은 지폐로 바꾸고 싶다니 은행 직원은 못 바꾸어 주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건너편 빵집에 가서 바꾸어 보란다. 무슨 이런 일이….
다비드는 잠시 고민하더니 마지막으로 건너편 우체국으로 가서 물어 보자고 해서 우체국으로 갔다. 창구에 있는 여직원에게 다비드가 우리는 순례자인데 100유로 지폐를 바꿀 수 없어 어려움이 있고 당신이 돈을 바꾸어 주면 우리를 구제해 주는 것이라 아첨(?)을 했더니 여직원은 마지못해 바꾸어 주겠다고 한다. 내가 여직원에게 100유로 지폐 한 장을 건네니 20유로와 10유로짜리로 100유로를 바꾸어 준다 그런데 위조 지폐라고 생각했는지 여직원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두 번이나 100 유로 지폐를 빛에 비추어 본다. 다행히 다비드의 기지 덕분에 겨우 100유로 지폐 한 장을 바꾸었으니 이틀은 버틸 수 있겠다. 100유로 지폐 한 장 바꾸는데 30분이 걸렸다.
오늘은 비교적 짧은 거리를 걷기로 했다. 530m 높이에 있는 Bourg-Argental에서 1200m까지 올라갔다 1120m 고지에 있는 Les Setoux 산간 마을까지 걸어가야 해서 힘이 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산길은 대부분 임도길이라 지루하고 또 걷는 재미도 없다. 레쎄토 산간 마을까지 가는 길에 한 번 다비드와 간식을 먹느라 잠시 쉰 후, 열심히 숲길을 걷고 산을 넘어 가는 동안 한 명의 순례자도 만나지 못했다. 레쎄토 마을에 도착해 마을로 들어 가려는데 집밖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가 똑바로 가면 지트가 있다고 알려 주신다. 나중에 들으니 다른 순례자들에게도 똑같이 행동하셨단다. 아마도 이것이 할아버지의 일과인가 보다. 부지런히 지트를 찾아 내려가는데 다비드가 나를 부른다. 뒤돌아 보니 교회에서 점심을 먹으며 쉬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교회에 들어가 기도를 하고 나오니 조금 후에 카타리나가 교회로 온다. 셋이서 함께 지트로 가니 지트는 텅 비어 있다. 일단 이층으로 올라가 각자 자기가 잘 침대를 정한 후에 짐을 풀었다.
샤워 후 빨래를 널려고 밖으로 나가니 카타리나는 풀밭에 있는 벤치에 앉아 소설책을 읽고 있다. 빨래를 널고 나서 건너편 자리에 앉으니 내게 썬크림을 건넨다. 그래서 나도 썬크림을 바르고 앉아 있는데 바람이 제법 분다. 그런데도 오후 햇살이 따까워 양산을 쓰고 앉아 일지를 쓰는데 다비드가 와서 내일과 모레 숙소를 예약하려고 하니 내 핸드폰을 달란다. 내 오렌지 심카드는 내일까지 유효하니 다비드는 남아 있는 8분간의 무료 통화로 내일과 모레 숙소 외에 본인의 22일 르쀠 숙소도 예약해야 한다. 다행히 3곳을 예약하고도 1분이 남아 있다. 이 1분의 통화는 내가 내일 숙소를 찾아 올 때 어려움이 있으면 써야 하다며 다비드가 생각해서 남긴 것이다.
카타리나와 걸으면서 길에서 몇 번 만났지만 서로에 대해 얘기를 한 적이 없었다. 오늘은 처음으로 같은 숙소에 머물게 되니 조금 가까워졌다. 32살인 카타리나는 슈트트가르트에 살고 있고 외과 의사다. 고등학교 졸업 후 1년간 필리핀에 있는 성당에서 무료 봉사활동을 해서 아시아 문화도 조금 알고 있고 슈트트가르트에 한국인 이웃이 있어 한국에 대한 관심도 있다.
일지를 쓰고 난 후 발바닥 물집을 터트려서 치료하고 요오드 용액을 발랐다. 걷고 나면 물집이 다시 생기기는 해도 다행히 다비드가 제안한 테이프 요법이 효과가 있다. 물집을 터트리고 마른 자리에 테이프를 붙이고 걸으니 통증이 월씬 덜하다.
카타리나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있는 사이 어제 저녁 다비드가 말한 시몬느가 지트에 왔다. 같이 걷던 순례자들은 다른 숙소로 가고 자기만 지트로 왔단다. 독일 울름에서 온 그녀는 방사선과에서 일을 하고 있으며 동행들과 같이 하루에 15-18Km 정도만 걷는다고 한다. 부엌에서 카타리나, 시몬느와 얘기를 하고 있는데 다비드가 침대위에 꺼내 놓은 내 안티프라민 로션을 가지고 오더니 자기 등이 너무 아프니 좀 발라 달란다. 몇 번 쓰라고 빌려 주었더니 안티프라민 로션을 너무 좋아한다. 바르면 화끈한 멘톨 느낌이 좋은 가보다.
저녁을 먹기 전, 바로 옆의 농가에 사는 지트의 여주인이 와서 숙박비를 받았다. 나는 아주머니가 3명의 투숙객들에게 숙박비를 받은 후 내게 줄 거스름돈이 생기기를 기다렸다 맨 마지막으로 100유로 지폐를 내고 거스름돈을 바꾸니 다비드는 내 사정을 알고 웃는다. 덕분에 르쀠까지 숙박비를 낼 돈 걱정은 안 해도 되었다.
1남 1녀의 아이를 키우는 젊은 여주인은 50마리의 젖소를 가지고 있고 지트도 운영을 하니 수입이 꽤 괜찮을 것처럼 보이지만 일이 많아 시골 살림을 하는 것이 고달플 것 같다. 겨울에는 여기에 스키를 타는 손님들이 많이 온단다. 엄마가 순례자들의 식사를 준비하고 청소를 하는 동안 아이들도 와서 엄마 옆에서 놀고 있다. 산간 마을 아이들이 학교에 갈 때는 학교 버스가 와서 태우고 간다고 남자 아이가 얘기를 해 준다. 어리지만 누나와도 잘 놀고, 남자 아이라 50마리의 소를 집으로 몰고 가서 젖을 짜게하고, 다시 풀밭으로 모는 일도 척척한다.
저녁으로는 렌틸콩과 송아지 요리, 수제 요구르트 그리고 마지막에 치즈가 나왔다. 산간 음식이라 그런지 음식 맛이 거칠고 낯설다. 그래도 카타리나는 맛있게 잘 먹는다. 어제 먹은 송아지 요리와는 달리 오늘 음식은 짜서 조금만 먹었다. 아주 낯설은 수제 요구르트(액상 치즈에 가깝다)는 무척 부드러운데 내 입맛에는 안 맞는다. 하지만 카타리나는 쨈을 넣어 달달하게 만든 후 맛있다며 3개나 먹는다. 저녁을 안 먹겠다고 한 시몬느도 우리와 함께 앉아 바게트 빵과 함께 샐러드를 먹고 있어 우리의 남은 음식을 나누니 잘 먹는다.
우리의 저녁과는 달리 채식주의자인 다비드의 메인 저녁식사는 렌틸콩과 계란 후라이 3개가 전부다. 저녁에는 보통 2인분의 식사를 하는 젊은 청년에게 계란 후라이 3개라니 불쌍하다. 그래서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 여주인에게 2개를 더 부탁해서 먹었고 덕분에 나도 한 개를 먹었다.
산간 지방이라 공공 인터넷을 사용해서 선이 잡히지 않아 인터넷 연결이 어렵다. 지트 입구에서만 겨우 인터넷 연결되니 문 앞에 서서 인터넷을 사용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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