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20일(목)
도보 구간: Les Setoux – Tence, 30.1 Km (실제 걸은 거리: 40 Km)
걸린 시간: 8 시간
아침에 일어나니 날씨가 좋다. 시몬느, 카타리나, 다비드와 함께 식당에 내려가 아침을 차려서 먹었다. 카타리나가 첫 번째로 떠나면서 자기도 오늘과 내일 우리와 같은 숙소에 예약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나보고 오후에 보자고 말한 후 떠났다. 며칠 동안 둘이서만 다녔는데 카타리나가 합류를 한다니 반갑다.
바젤에서 자랐고 울름대학교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지금은 슈트트가르트에서 외과의사로 일하고 있는 카타리나는 씩씩하게 잘 걷는다. 걸음이 조금 뒤뚱거려 이상하다 싶었더니 작년에 덤블링을 타다가 오른쪽 발목이 부러져 수술을 받았고 올해 철심을 빼고 회복을 위해 걸으러 왔단다. 그러면서 어린이만 덤블링을 타야 한단다.
시몬느하고는 걷는 속도가 느려서 다시 만날 기회가 없어서 떠나면서 서로 잘 걸으라고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시몬느는 오늘 동료 순례자들과 Montfaucon-En-Valey(몽파꽁 엉벨레)까지 걷는다.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전나무 숲길을 걷고 있으니 늦게 출발한 다비드가 열심히 걸어 오고 있다. 오늘은 30 Km나 걸어야 해서 다비드를 먼저 보내고 혼자 천천히 걷기로 했다. 언덕을 내려가 산을 넘고 멋진 오름 풍경을 구경하며 걸어가다 내리막길이라 조금 속도를 내서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Montfaucon-En-Valey(몽파꽁 엉벨레)로 가는 내리막길에서 작은 돌멩이에 미끄러져 앞으로 넘어졌다. 순간 아무 생각도 안 나고 잠시 편안하게 땅에 엎드려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천천히 일어나 보니 오른쪽 손목이 조금 불편할 뿐 무릎도 멀쩡하다. 무릎 보호대를 해서 다치지 않았나 보다. 혹시나 하고 셀카를 찍어 얼굴을 보니 변색 안경에 스크래치가 심하게 생겼고 얼굴에 작은 상처가 나 있다. 얼굴에 난 상처에는 흙이 들어가 있어 소독을 하기가 어려워 일단 후시딘 연고를 바르고 불편한 손목에는 맨소래담 로션을 바른 후 압박 붕대를 했다. 자가 응급 치료를 하고 일어나 걸으려고 스틱을 잡으니 다친 손목에 힘이 잘 안 간다. 오늘 가야 할 거리의 반도 못 왔는데 다쳐서 속상했지만 이 정도 다친 것에 감사할 뿐이다.
오후 1시경 Montfaucon-En-Valey에서 Notre-Dame-de-Motfaucont 성당에 들어가니 방문객들이 벽에 걸린 그림을 잘 보라고 자동적으로 조명이 켜진다. 잠시 기도를 드리고 그림을 구경하며 쉬었다가 오늘의 목적지인 Tence(떵스)를 향해 걸어갔다.
그런데 맵스미 지도에 다운로드 받아간 GPX 지도와 내가 가는 방향이 달라 조금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카미노 표시를 제대로 따라 걷고 있으니 믿고 표시 대로 걷기로 했다.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비구름이 몰려오고 있어 조금 속도를 내서 걸었다. 오름의 멋진 풍경을 보니 왜 이렇게 돌아가게 만들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La Pepeterie에 도착하니 천둥이 치고 날씨가 심상찮다. 하나님께 한 시간만 비를 늦춰 달라고 기도를 하며 비를 맞지 않기 위해 바삐 걸었다. Tence에 도착하니 해는 비치는데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판쵸를 꺼내 입으니 한 아주머니가 비가 오지 않을 거라고 얘기하며 지나간다. 아주머니 말씀대로 잠시 뿌리던 비가 멈추더니 금방 해가 난다. Tence 시내를 벗어나 캠핑장을 찾아가니 입구에서 다비드가 기다리고 있다. 30분 전에 카타리나와 도착해서 텐트를 잡아 놓고 숙박비 지불도 다했으니 카타리나에게 12.50유로를 주면 된단다. 다비드는 혼자 자서 25 유로이고, 우리는 둘이 자니 12.50 유로란다. 그러면서 우리 텐트로 가는 길에 시즌이 아니라 여성 화장실과 샤워장을 개방하지 않아 남성용을 함께 사용해야 한다고도 알려 준다.
텐트로 들어 가며 카타리나에게 넘어져서 손목을 조금 다쳤다고 하니 그녀는 즉시 내 손목을 만져본다. 그리고는 눌렀을 때 통증이 없는 것을 보니 뼈는 다치지 않았고 근육이 조금 놀란 것 같다고 하며 자기가 쓰는 테이핑을 꺼내서 준다. 내가 어떻게 쓰는지 몰라 난감해 하니 뜯어서 직접 붙여 준다. 왜 테이핑을 가지고 다니냐고 물으니 그제서야 수술한 발목에 한 테이핑을 보여 준다.
배낭을 내려 놓고 샤워를 하고 빨래를 해서 널고 언제나처럼 발에 생긴 물집을 치료했다. 그러고 나니 오늘 점심을 제대로 먹지 않아 배가 고프다. 오늘 저녁에는 스낵바에서 간단히 먹는다고 했으니 빵을 조금 먹었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 다비드가 와서 스낵바가 캠핑장에 없다며 Tence까지 1.5 Km를 걸어 나가서 저녁을 먹고 들어 와야 한단다. 그러면서 힘들면 음식을 사다줄테니 여기서 쉬어도 된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신선한 샐러드라도 먹어야 될 것 같아 발바닥 통증을 참으며 셋이서 Tence 시내로 걸어갔다. 가는 중에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시내로 가서는 ‘카지노’ 슈퍼에 들러 내일 아침에 캠핑장에서 먹을 빵, 우유, 과일, 버터, 요구르트와 일회용 커피잔을 산 후 돈은 1/n로 나누어 냈다. 슈퍼를 나와 근처 식당들의 메뉴판을 보며 채식주의자를 위한 식당을 찾았다. 햄버거 가게에 들어가 물어보니 다행히 채식주의자 메뉴가 있다고 해서 들어 가니 아주 깔끔하고 모던한 식당이다. 손님들도 제법 많다.
나는 샐러드 세트 메뉴를 시켰는데 음료 포함 11.50유로다. 양이 많아 1/3은 카타리나에게 주었다. 카타리나와 다비드는 햄버거 세트를 시켰는데 맥도널드 햄버거보다 맛도 좋단다. 특히 세트 메뉴에 나온 감자 튀김이 아주 맛있었다. 다비드는 햄버거 세트를 다 먹더니 햄버거가 맛있다며 한 개 더 시켜서 먹었다.
식사 후 돌아오는 길에는 비가 그쳤다. 다시 절뚝거리며 1.5 Km를 걸어 캠핑장으로 돌아 오니 수영장에서 수영하는 사람들이 있다. 캠핑장에 수영장 시설이 있어 깜짝 놀랐다. 카타리나는 수영을 못했다며 아쉬워한다.
텐트 안에는 침대 두 개와 작은 램프와 콘센트가 있다. 텐트 침대에 누웠는데 처음 경험하는 것이라 그런지 무척 불편하다. 강가에 캠핑장이 있어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습도는 높고 기온이 낮아 춥다. 오늘밤 잠을 편히 잘 수 있을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