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만에 방문한 독일은 예상했던 대로 눈에 띄게 변한 것이 없다. 내가 살던 당시에 상점들은 월-금요일에는 저녁 6시까지, 토요일에는 12시까지 문을 열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목요일에는 저녁 8시까지, 또 한달에 한 번 첫번째 토요일에 저녁 6시까지 상점 문을 연장해서 열었다.
하지만 이번에 가니 독일도 글로벌화의 영향을 받았는지 저녁 늦게까지 여는 상점들이 많아 조금 낯설다.
요즘 독일을 다녀 온 사람들이 항상 얘기하는 것이 기차를 탈 때는 이전의 정확한 독일을 생각하면 안 된다고 해서 걱정이 되어 미리미리 서둘렀다.
다행히 내가 탄 열차는 두 번 다 제 시각에 나타나 큰 불편을 겪지는 않았지만 쾰른에서 기차를 갈아 타면서 플랫폼 게시판의 안내가 정확하지 않아 기차를 타는데 조금 허둥댔으나 무사히 기차를 탔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기차를 타도 열차표 검사를 잘 하지 않지만 독일은 매 역마다 새로 탄 사람들의 기차표를 검사하는 직원이 열차 안에 상주해 있다.
베를린과 본에서 버스와 지하철, 전철을 타면서 표를 파는 창구나 검사하는 사람을 본 적은 없다.
그 때문에 역에서 안내를 전혀 받을 수 없어 사전 지식이 없으면 조금 불편을 겪을 수도 있다.
베를린에서는 버스를 타면서 표를 사고 스탬프도 찍을 수 있다. 하지만 지하철은 플랫폼에서 해야 한다. 그러나 하루 이용권 티켓은 지하철 역에서만 살 수 있다.
한 번은 베를린에서 일일 이용표를 사고 지하철을 탔는데 아무리 둘러 봐도 스탬프 기계가 없다.
(베를린 전철이나 지하철은 칸을 이동할 수 없다.) 이상해서 일단 내려 다음 지하철을 탔는데 또 없다. 다른 승객에게 어디에 스탬프 찍는 기계가 있냐고 물으니 역 플랫폼에 있단다. 결국 문이 닫히기 전 간신히 내려 스탬프를 찍은 후 다음 지하철을 타고 행선지로 가야 했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탄 사람은 표를 샀더라도 어제 탔다는 스탬프가 찍혀있지 않으면 무임 승차로 간주해 60 유로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난 자유 여행을 하는 동안 베를린 전역을 다닐 수 있는 하루 이용 티켓(6.90유로)을 구입해서 사용했다.
베를린 도착해서 4일째 저녁, 인도네시아에서 온 회사 동료 두 명과 쿠담에서 쇼핑을 하고
호텔로 돌아 가는 길이었다.
두 친구들이 회교 신자라 저녁을 먹을 만한 식당을 찾기가 마당치 않아 걸어 가다 결국은 호텔 뒷 편에 있는 유명한 '카페 아인슈타인' 근처까지 갔다. 갑자기 한 젊은 청년이 다가 오며 자기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핸드폰 지도에서 위치를 알려 달란다.
도와 주려고 하는 순간 두 명의 사복 경찰이 다가와 여권 검사를 하니 가지고 있는 여권을 보여 달란다. 우리는 순순히 여권을 보여 줬다. 그리고는 마약 거래 의심이 가니 가지고 있는 현금을 보여 달란다. 우리는 아무 의심 없이 돈을 보여 주었는데 이들 중 돈을 검사하는 척 하던 한 명이 우리들 눈 앞에서 돈을 세는데 마술을 하듯 우리의 돈 일부를 슬쩍 빼갔다.
결국 난 200 유로를, 같이 있던 회사 동료 한 명은 500유로를 도난 당했다. 너무 기가 막혀 호텔 데스크에 얘기를 하니 처음 들었다며 경찰서에 가서 신고를 하라며 베를린 중앙역 근처의 경찰서 주소를 준다.
세 명이서 저녁도 굶고 택시를 타고 경찰서를 찾아 가니 경찰서가 무슨 어두컴컴한 성 같다. 불빛도 없는 컴컴한 경찰서 입구에서 초인종을 누르니 한참 후에 한 경찰이 문을 열어 주더니 들어 오란다. 들어 가니 다시 대기실이다. 경찰 한 명이 나오더니 지금 일이 있으니 조금 기다려야 한단다.
한참을 기다려 나타탄 경찰이 우리 얘기를 듣더니 이건 강도 사건이라 자기가 못하고 다른 서에서 전담 경찰이 와서 조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그렇게 할 의사가 있냐고 묻는다.
난 아무 생각도 없고 돈을 찾을 수도 없을 것 같아 그저 돌아 가고 싶었지만 같이 간 회사 동료가 다른 사람이 피해 보지 않게 하려면 조서를 쓰는 것이 좋겠단다. 이왕 거기까지 간 것 그렇게 하기로 뜻을 모으고 경찰을 기다리는데 또 한 시간이 걸렸다.
밤 열 시 반경에 나타난 두 명의 경찰(여자 1면, 남자 1명)이 우리를 보더니 나에게 독일어가 된다며 나만 경찰서 내 한 방으로 함께 들어가 조서를 쓰잖다.
아무 생각 없이 찾아 간 경찰서에서 결국은 한밤 중에 조서를 쓰는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약 한 시간 동안 두 명의 경찰과 한 방에 앉아 증인 조서를 쓰고 난 후 의심이 되는 범인들의 사진들을 보여 주며 확인해 보란다.
눈에 띄는 한 사람이 처음에 있었지만 확신이 없으니 지목을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사진첩의 모든 사람들이 외국인이다.
두 경찰들 말이 이런 범죄가 일년 전부터 나온 신종 수법인데 요즘 낮과 밤을 안 가리고 일어 난단다.
여성 경찰은 사복 경찰이 여권 검사 등 불신 검문을 할 때는 꼭 증명서를 보여 주어야 한다며 내게 자신의 빨간 증명서를 보여 준다. 또한 돈을 보여 달라고 하는 법은 없으니 꼭 명심하란다.
증인 조서를 꾸며도 돈을 찾을 수는 없단다.
밖에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있는데 밤 열 한시 반이 넘어서야 조서 작업이 끝났다. 친절하게도 문을 열어 놓은 채 마주보는 책상에 앉아 있는 두 경찰관들은 그들 중간 지점에 삼각형 형태로 멀찍이 떨어 앉아 있는 내게 사건 현황에 대해 친절하게 물었다.
외딴 곳에서 늦은 밤 숙소로 돌아 가는 게 걱정이 되어 늦은 밤 경찰서 앞에서 택시를 잡을 수 있냐고 대해 물으니 한 경찰관이 본인들도 현장 탐사를 가야 하고 베를린 호텔이 현장 근처니
불편하지 않다면 자기 차를 타고 가도 된단다.
조서 작성을 마친 후 우리 세 명은 한 경찰의 개인차를 타고 호텔로 갔다. 이날 밤 난 200 유로짜리 특별한 관광을 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 생각하니 200 유로 잃어 버린 게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위험한 일도 일어 날 수 있었고 한편으로는 내가 보여 준 돈의 반만 가져간 범인들의 소심함(?)에 웃음도 나왔다.
모든 회사 일정이 끝나고 이제 혼자 남았다. 민박집으로 짐을 옮긴 후 자유 여행을 시작할 때 강도 당한 일로 혼자 여행 하기가 조금 두렵기는 했지만 이 일로 내 자유 시간을 누리지 못한다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아 용기를 내기로 했다. 덕분에 4박 5일간의 베를린 여행을 즐길 수 있었고 그 시간 동안 아주 행복했다.
한국으로 돌아 가는 날 아침, 숙소에서 전철을 타고 가다 공항 버스로 갈아 탔다. 테겔 공항에 도착하니 공항은 제주도 공항보다 규모도 작고 불편하다.
루프트한자 데스크 앞에서 체크인을 하려고 기다리는데 옆에서 나이 지긋한 두 한국 여성들이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대화를 하시는데 웃음이 절로 나온다.
내가 알아 듣고 웃으니 한국 사람이냐고 물으신다. 알고 보니 한국 할머니가 혼자 독일인과 결혼한 나이든 막내 동생을 방문하고 돌아 가던 길이란다. 근데 이 할머니는 심장 수술을 두 번이나 하셔서 장애인 증명서를 가지고 있었다.
간호사로 독일에 왔다 독일에서 사는 동생은 말도 안 통하고 몸이 불편한 언니가 혼자 가는 것이 걱정이 되어 나 보고 언니와 함께 가면서 도와 줄 수 있냐고 묻는다. 그래서 갑자기 장애인 보호자로 뮌헨 공항까지 동행하게 되었다.
할머니를 도와 뮌헨 공항에 내려 장애인 도우미에게 인계해 주고 가려니 독일 도우미가 차에 자리가 있으니 나도 함께 가잖다. 생각지도 않은 공항 도우미 차에 올라 타 할머니와 함께 차를 타고 여권 검사를 받고 한국으로 가는 공항 터미널로 이동했다. 비행기를 탈 때도 루프트한자 항공사는 우리 둘만 맨 처음 비행기를 타도록 배려해 주어 처음으로 텅 빈 항공기에 탑승하는 경험도 했다.
이번 독일 여행에서도 난 여러 특별한 경험을 했고, 감사한 일도 아주 많았다. 역시 도전해야 한다. 행. 복. 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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