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1일(목), Rüegisberg – Schwarzenburg – St. Antoni - Freiburg, 24 Km, 9시간
(St. Antoni에서 Freiburg까지는 버스 이동)
어제 저녁, 오늘 아침 로즈비타와 8시에 만나기로 약속을 해서 아침은 7시에 먹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아주머니가 식탁에 아침을 정성스럽고 예쁘게 차려 놓으셨다. 내가 식탁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초등학생 정도의 아들 아이가 내려와 내 옆에 앉아 아침을 먹으려고 내 옆에 앉는다. 그런데 이 녀석은 책을 보고 있고 엄마가 맞은편에 앉아 조용히 얘기를 하며 빵에 누텔라 크림을 발라 주면 받아먹고 있다. 한국이나 스위스나 아침 풍경이 비슷하다. 식사 중에 아주머니는 숙소에서 도장을 찍어 줄 수 없으니 페허가 된 대성당 앞 박물관에서 순례자 도장을 받으라고 알려 주신다.
식사 후 하룻밤 잘 지내고 간다고 감사 인사를 드린 후 한 정거장 걸어 로즈비타가 묶고 있는 호텔로 갔다. 로즈비타는 벌써 호텔 입구에서 떠날 준비를 하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먼저 폐허가 된 대성당으로 가는데 로즈비타는 어제 저녁에 다녀와서 길을 잘 알고 있다. 그러면서 호텔 앞이 교회라 종소리 때문에 조금 시끄러웠단다. 스위스의 교회 종소리는 15분마다 울린다.
박물관 입구에서 순례자 도장을 찍고 나와 Schwarzenburg를 향해 걸었다. 날씨는 더웠지만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 걸을 만하다. 도중에 야크 무인상점 앞에서 쉬는데 코에 산소 호흡기를 단 한 할아버지가 장애인 차를 몰고 강아지와 함께 오시더니 무인 상점에 들어가 아이스크림 한 개를 사 가지고 나오신다. 나중에 보니 꽤 멀리서 이 아이스크림 한 개 사러 이곳까지 오신 것이다. 아마 할아버지의 하루 산책 코스인 것 같다.
Schwarzenburg로 가는 길에 길 표시를 못 보고 한참을 걸어가다 이상해서 GPX를 보니 까미노 길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가던 길을 되돌아 걷다 보니 그제서야 까미노 길표시가 눈에 들어 온다. 20분 이상을 알바했다. 12시 경에 드디어 Schwarzenburg 역에 도착했다. 로즈비타가 은행 ATM에서 돈을 찾아야 한다기에 나는 그 사이 지나가는 스위스 청년에게 물어 우리에게 적당한 식당을 찾았다. 이 청년이 근처에 두 곳이 있다고 하기에 어느 곳을 더 추천하느냐고 물으니 Migro 건너편 이탈리안 식당이란다. 이 식당에서는 야외 식사가 가능하단다.
로즈비타가 돈을 찾은 후 이탈리안 식당으로 가서 나는 스프, 샐러드, 파스타, 후식까지 나오는 점심 메뉴(16.50 CHF)를, 로즈비타는 배가 고프지 않다며 적은 양의 점심 메뉴를 시켰다. (같은 메뉴지만 양을 적게 주어 9프랑 정도 한다.) 식당에서 만든 차 음료를 시키면서 날씨가 너무 더워 수돗물을 추가로 시키면서 얼음을 달라고 하니 여종업원은 친절하게 얼음물을 가져다준다. 영수증을 달라고 해서 보니 수돗물값이 1.60 프랑이다. 수돗물 먹고 돈을 내다니... 하지만 두 번이나 가져다준 얼음값이려니 하고 의문 없이 기꺼이 지불했다. 식당에서 충분히 휴식을 한 후 로즈비타에게 배낭과 카메라를 맡기고 잠시 건너편 Mirgro가서 물집에 쓸 반창코를 두 종류 사 가지고 와서 발바닥에 붙이고 다시 까미노길로 떠났다.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 충분히 쉬어서 괜찮을 줄 알았던 발바닥 통증은 오후가 되니 더 심해진다. 2시간 정도 걸어가다 로즈비타에게 나는 더 못 걸을 것 같으니 미안하지만 St. Antoni에서 버스를 타고 Freiburg로 가겠다고 알렸다. 로즈비타도 나와 함께 Freiburg로 가고 싶어 했지만 내가 머무를 숙소에 전화를 거니 순례자 방이 없다고 했단다. 하는 수없이 로즈비타는 걸어 가다 작은 마을에서 잘 방을 찾기로 했다.
그런데 St. Antoni에 도착해 길을 가는데 순례자 숙소 안내 표시가 나온다. 수요일은 순례자 숙소가 문을 닫는 날이지만 운 좋게도 숙소 관리자가 일이 있어 잠시 들렸다 우리가 하는 얘기를 듣고는 숙소를 보여주겠다고 한다. 나는 밖에서 기다리고 로즈비타가 길가 숙소에 들어 갔다 나오더니 괜찮은지 오늘 자기는 이곳에서 자겠단다. 그런데 샤워실과 화장실은 길 건너편에 있다. 로즈비타가 관리인에게 집 열쇠를 받은 후 배낭을 내려 놓고 나와 같이 St. Antoni 교회로 걸어 갔다. 교회에서 기도를 하고 도장을 받은 후 마을 중심으로 내려와 슈퍼 건너편 버스 정류장에서 Freiburg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로즈비타에게 나 혼자 기다려서 타고 가도 되니 피곤할 텐데 얼른 장을 봐서 먼저 숙소로 올라 가라고 해도 괜찮다며 함께 10분을 기다려 준다. 참 고맙고 마음씨 따뜻한 순례자다. 내가 너 때문에 발이 아파도 여기까지 걸어왔다며 고맙다고 인사를 하니 자기도 혼자 걸었으면 힘들었을 거라며 나 때문에 여기까지 걸어 올 수 있었다며 고마워한다. 10분 후 버스가 오고, 우리는 서로 껴안고 건강하고 끝까지 잘 걸으라고 서로에게 덕담을 건넨 후 헤어졌다. 겨우 이틀간 함께 걸었는데 어느새 정이 들었는지 헤어지는 게 아쉬웠다.
프라이부르그 역 지하 버스 터미널에서 내린 후 역 앞에 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정류장에 서 있는 프라이부르그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 세 명에게 숙소 지도를 보이고 숙소에 가는 버스 번호를 물어봤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불어를 한다. 내가 독일어로 물었더니 잠깐 멈칫하더니 그 중 한 명이 독일어로 답변을 해주느라 무척 애를 쓴다. 나중에 보니 이 학생들 덕분에 가장 안전하게 숙소를 찾아가는 길 안내를 받았다.
버스를 타고 앉아 안내받은 버스 정류장을 지나칠까 봐 긴장을 하며 핸드폰의 지도를 보고 있으니 건너편 아주머니가 영어로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으신다. 내가 무척 긴장해 있었나 보다. 괜찮다고 얘기를 하고 안내받은 대로 프라이부르크 대학 다음의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려고 하니 아주머니도 같이 내리신다. 친절한 아주머니는 나를 보며 하루 잘 보내라고 인사를 하고 가신다. 참 고마운 분이시다. 감사 인사를 하고 숙소를 찾아 가려는 데 한 독일 청년이 나 보고 프라이부르크 대학을 어떻게 가냐고 묻는다. 나도 여기가 처음이라 잘 모르지만 버스가 온 길 반대쪽으로 한 정거장 내려가면 프라이부르크 대학이라고 알려줬더니 그리로 간다. 그냥 봐도 무거운 배낭을 멘 여행객 차림인 내가 이 청년의 눈엔 자기를 도와줄 유일한 사람이었나 보다.
Maps.me를 보며 언덕에 있는 조용한 주택가를 지나고 차도를 건넌 후 길을 찾아 가는데 가톨릭학생 기숙사로 가는 지름길이 눈에 띈다. 올라가도 될 지 확신이 안 서 결정을 못하고 잇는데 마침 지나가는 초등학교 남학생 두 명에게 물으니 그 중 한 명이 내가 가야 할 기숙사를 알고 있다. 그러면서 내가 물어본 길로 가도 되고 조금 더 올라 가면 정문이 나온단다. 역시 길을 나서면 세상에는 친절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가톨릭 학생기숙사로 들어가니 시간이 늦어 사무실 직원이 퇴근하고 없다. 방 열쇠를 받아야 하는데 아무도 없어 난감해하고 있는데 마침 복도를 지나 가는 동양 여자가 있어 도움을 청하니 자기도 잘 모르겠단다. 하는 수 없이 이메일 답변을 받았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거니 나를 기다리는 직원이 있다. 얼마나 고맙던지……
조금 있으니 후크라는 키 크고 친절한 남자 직원이 내려와 반갑다고 인사를 한다. 먼저 나를 데리고 1층 식당을 보여주고는 열쇠를 사용해 엘리베이터를 작동시킨 후 5층 게스트하우스 방으로 데리고 간다.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하다고 하니 괜찮단다. 방은 독일 유학생 시절 살았던 기숙사 방과 비슷하다. 방에는 세면대, 옷장, 책상과 침대가 있고 책상 옆에 모뎀도 연결되어 있어 인터넷 이용이 원활하다. 배낭을 내려 놓고 다락방 창을 열어 보니 경치가 정말 아름답다. 그사이 후크는 수건이 비치되어 있지 않다며 수건을 가져다주고는 4층에 부엌이 있다고 알려 준다. 내일 체크아웃은 몇 시까지 해야 하냐고 물으니 편안히 지내다 내일 아침 12시 전에만 나가면 된단다. 그러면서 저녁을 원하면 아래 식당에서 먹고 내일 체크 아웃할 때 지불하면 된다고 알려 준다.
발이 아프고 피곤해서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가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다. 그래서 후크의 안내대로 1층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으려고 하니 식당 아주머니가 순례자가 올 거라고 들었는지 아주 친절하게 안내를 해 주신다. 메뉴가 두 개라 골라야 하는데 내가 옥수수로 만든 이탈리아 음식을 잘 모르니 찻숟가락을 가져 오란다. 의아해하며 가져다주니 한 숟가락 떠서 내게 먹어보라고 주신다. 이탈리아의 대표적 음식인데 먹어 보고 원하면 떠 주겠단다. 한 숟가락 먹어 보니 맛은 괜찮은데 밥처럼 많이 먹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울 것 같아 익숙한 파스타 국수를 먹기로 했다. 돼지고기 구이가 조금 뻣뻣했지만 내게 주신 음식을 맛있게 먹고 방으로 올라가 침대에 누웠다 일어나니 밤 열 시다. 오늘 하루 너무 힘들었는지 잠깐 까무라쳤다 일어났다.
St. Antoni에서 버스를 타고 오면서 보니 Freiburg 구시가지가 너무 아름답다. 발바닥이 아프다고 이 아름다운 도시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어 낼 아침에 구시가지로 도보 여행을 가기 위해 지도를 검색한 후 다시 꿈나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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