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스위스길(Jakobsweg)

스위스 까미노: 10. 인터라켄 - 메어링겐 - 슈피츠 - 베른

hadamhalmi 2018. 6. 18. 00:26

6 18 (), Interlaken - Beatushoehle - Mehringen - Spiez - Bern, 20 Km, 6시간 반

(인터라켄에서 메어링겐까지는 걸어서메어링겐에서 슈피츠까지는 배로슈피츠에서 베른까지는 기차로 이동했다.)

 

 

지난 밤 바람이 세게 불고 날씨가 거칠었던 것과는 달리 오늘 아침 날씨는 조금 흐렸지만 맑고 조용하다.

 

아침 식사 후 체크아웃을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Interlaken West가 있는 구시가지로 출발했다어젯 저녁 보아 둔대로 열심히 걷고 있는데 자꾸 브리엔쯔로 가는 길안내 표시가 나온다. 30분 정도 걸어 가다 아무래도 이상해 지도를 보니 인터라켄 구시가지로 가는 것이 아니라 브리엔쯔 방향으로 가고 있다속상해하며 길을 돌려 다시 유스호스텔로 돌아오니 아침 9시다한 시간이나 알바를 했다.

 

다시 지도를 확인한 후 유스호스텔을 조금 지나 오른편에 있는 다리를 건너니 강변길에 인터라켄 구시가지로 가는 4번 까미노길 표시가 나온다.

 

인터라켄을 지나니 노이하우스(Neuhaus)까지 자연보호구역이다아침이라 공기도 상쾌하고 호숫가를 따라 걷는 조용한 숲길은 걷기도 편하다. Beatushoehlen-Sundlauenen 선착장에서 점심을 먹으며 쉬었다이곳부터 오르막이 시작되어 동굴을 지나 메어링겐까지는 산길이다차는 터널을 통해 가지만 사람들은 산길로 다녀야 한다까미노 길을 걷다 Beatus 동굴 표시를 보고 Brunnen에서 만난 Monika Rene 생각이 났다한국에서도 잘 안가는 동굴을 스위스에서 가기는 그렇지만 발도 아프고 조금 쉴 생각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원래 동굴 입장료는 19프랑인데 인터라켄 유스호스텔에서 숙박할 때 준 무료 교통 이용권을 보더니 3프랑을 할인해 준다동굴과 박물관을 둘 다 보는 입장료인데 박물관에 안 간다고 해도 함께 사야 한단다. (박물관은 동굴을 나와 산 아래로 5분 정도 내려가야 한다.)

 

동굴에는 개인 관광객보다는 견학나온 초등학교 아이들과 단체 관광객이 더 많다한 스위스 단체 관광객은 합창을 하는 사람들로 동굴 입구 식당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너무 잘 부른다동굴을 나오다 노랫소리가 들려 가보니 동굴 안에서도 화음을 넣어 합창을 하고 있다.

 

쉴 생각으로 들어 갔던 동굴은 30분 정도 계속 오르막 길을 걸어야 한다동굴안 산행인 셈이다동굴에 들어 갔다 나오는데 1시간 정도 걸리는데 밖으로 나오니 발바닥 통증이 더 심하다의자에 앉아 조금 쉬다 산길을 걸어 메어링겐에 도착하니 오후 두시 반이다아무래도 더 걸어 가는 것은 무리일 것 같아 메어링겐에서 배를 타고 툰으로 가려고 선착장으로 가니 선착장에는 소풍 온 학생들과 학생을 인솔하시는 선생님이 있다이들은 슈피츠로 간단다.

 

그제서야 강을 건너 슈피츠로 연결되는 까미노길이 생각나 배를 기다리는 선생님에게 슈피츠에 가면 툰이나 베른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가 쉽냐고 물으니 그렇단다원래 계획은 툰(Thun)까지 배를 타고 가서 스위스 수도인 베른까지 기차로 갈 생각이었으나 슈피츠가 교통편이 좋다니 배를 타고 가 슈피츠역에서 기차를 타고 베른으로 직접 가는 것이 시간도 절약되고 교통비도 싸서 계획을 바꾸었다.

 

오후 3 5분에 온 툰으로 가는 배를 타고 배 안에서 슈피츠 가는 배표와 베른으로 가는 기차표를 샀다배에서 내리려는데 내게 표를 판 선원이 오더니 선착장 바로 앞에 있는 정류장에서 서 있는 버스를 타고 슈피츠역까지 가라고 알려 준다참 친절한 분이다. (내가 메어링겐에서 베른까지 교통표(배표와 기차표)를 사서 이 표로 슈피츠 버스도 이용할 수 있다.) 

 

슈피츠역에 도착해서 사진을 찍으려고 하다 기차 시간표를 보니 곧 베른 가는 기차가 들어 온다서둘러 베른 가는 기차를 타고 오후 4 20분에 베른 역에 도착했다핸드폰 배터리를 다 써 Maps.me 지도를 볼 수가 없어 베른 역에 내려서는 먼저 베른 역 안내소를 찾아 갔다안내소에서 시내 지도를 받고 시내로 가는 방향을 안내 받은 후 길을 건너 10분 정도 걸어 오늘의 숙소인 베른 글로케 백패커스 호텔을 잘 찾아갔다.

 

체크인 후 방으로 가 짐을 풀고 부엌에 가 보니 밥을 해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오늘 저녁은 오랫만에 밥을 해 먹기로 했다비빔밥을 해 먹으려고 근처 coop에 가서 우리가 먹는 쌀을 찾았지만 없다호스텔에서는 이곳 사람들이 즐겨 먹는 노란 쌀과 파스타 국수는 무료로 제공하고 있지만 슈퍼에서 스타게티 국수 한 봉지와 씻어 놓은 야채 샐러드 한 봉지양파 한 개당근 한 개달걀 4개를 사왔다

 

그런데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하려는데 쓰촨 지역에서 온 중국인 아주머니가 전기밥솥으로 밥을 하려고 한다꾀가 나서 혹시 하는 김에 내 것도 같이 해서 밥 한 공기만 줄 수 있냐고 물으니 그렇게 하겠단다이렇게 소통하기까지 글도 쓰고 한자도 사용하고 애를 많이 썼다. (예전엔 한국사람들도 외국에 나가서 대화를 할 때 글로 쓰면 이해하지만 말로 하면 알아듣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딱 그 모습이다.)

 

우여곡절 끝에 소통이 되었고 드디어 내 밥도 전기 밥솥에 앉혔다그 사이 야채를 볶아 놓고 기다리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밥이 되지 않는다더 이상 서 있을 수 없을 정도로 발이 아프고 힘드니 그냥 내 밥 혼자 할 걸 하는 후회도 했다.

 

한참을 기다려 불이 보온으로 바뀌고 나서 밥솥을 열고 밥이 되었나 보니 아니나 다를까 샐러드에 써야 할 정도로 되다아주머니가 이런 쌀로는 처음 밥을 하는 것이라 우리 쌀 정도의 물만 부었나 보다나는 배도 고프고 발도 아프고 더 기다릴 수 없어 그냥 밥 한 공기만 달라고 해서 냄비에 물을 붓고 다시 밥을 지었다그 후 아주머니는 밥솥에 물을 더 붓고 밥을 지었다.

 

물론 한국의 쌀과 같은 맛은 없지만 독일에 살 때도 이 쌀을 먹어 보았으니 내게 이 밥이 그리 낯설지는 않다준비한 비빔밤 야채 고명에 계란 후라이 두 개를 얹고 한국에서 가져간 참기름고추장간장으로 간을 해서 미역 냉국과 함께 먹으니 그동안 이곳에서 먹었던 그 어떤 음식보다 맛있다역시 난 한국 사람인가보다.

 

정년 퇴직을 하고 연금으로 생활하시는 중국 아주머니는 남편과 함께 유럽 여행 중이시다이 분의 남편도 이 쌀을 처음 먹어 보는지 아주머니에게 못 먹겠다고 불평을 하니 옆에 있던 다른 중국 여행객이 밥을 먹어 보더니 이 쌀은 이렇게 먹는 거라고 알려 준다그제서야 남편분이 아주머니가 정성스레 준비한 음식과 함께 저녁을 드신다

 

밥을 해 주신 아주머니에게 감사 인사로 오늘 저녁에 산 방울 토마토 한 접시를 씻어 드리니 처음에는 안 받겠다고 한사코 사양하신다그래도 계속 권하니 그제서야 고맙다고 하며 식탁에 가져가 남편 분과 드신다역시 아시아 문화는 공통된 점이 있다아주머니 덕분에 오늘 저녁 메뉴가 스파게티 비빔국수에서 원래대로 비빔밥으로 돌아왔고 오랜만에 맛있는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호두나무
1937년 이 산길을 봉사자들의 노동력으로 만들었다는 표시. 조그마한 마을에서 높은 돌산에 이런 둘레길을 만들 정도면  아주 많은 사람들의 노동력과 시간이 필요했을텐데 요즘 시대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