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7일(일)
도보 구간: 군산제방 – 청암산 정상 – 대려마을 – 금성산 – 칠다리 – 옥구 향교 – 척동 마을 – 은파호수공원, 20 Km
걸린 시간: 7시간
저녁에 서울로 올라가지만 오늘의 도보 여행은 조금 느긋하게 시작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오늘은 구불 5길이 시작하는 옥산 면사무소까지 택시를 타고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택시를 타고 15분 정도 걸려 옥산 면사무소 앞에 내리니 구불 4길 표시가 보인다. 화살표 안내대로 걸어 가니 구불 5코스 시작점인 군산호수 제방이 나온다. 공휴일이라 그런지 걸으러 온 사람들이 제법 많다. 그런데 구불 4길도 군산 호수를 한 바퀴 걷는다. 노란 리본이 구불 4길과 구불 5길의 구분없이 여기저기 붙어 있어 우리가 걸으려는 구불 5길을 찾아 걷기가 쉽지 않다.
도보 시작부터 처음 보이는 노란 리본을 보고 걷다 군산호수 뚝방길로 길을 잘못 들어 섰다. 하지만 조금 전 봤던 지도에서 오른쪽으로 호수를 끼고 걸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갈림길로 되돌아와 보니 다른 방향에도 노란 리본이 달려 있다. 구불 5길은 직진해야 한다. 그래서 이후부터는 구불 5길 표시를 주의 깊게 살피며 걸었다. 군산호수 주변의 숲길은 수종도 다양하고 흙길이라 아주 좋다. 야트막한 언덕을 올라 갔다 내려 갔다를 반복하다 마지막에 청암산 정상 근처에서 10분 정도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면 청암산 정상이다. 청암산 정상에는 정자가 있는데 아쉽게도 무성하게 자란 나무들이 시야를 가려 정자에 올라가도 주변 풍경은 전혀 볼 수가 없다.
청암산 정상을 내려와 오늘 도보를 시작했던 군산호수 제방 방향으로 걸어 가다 왼쪽으로 내려가라는 구불길 표시를 보고 언덕을 내려 가야 대려마을이다. 내리막길이지만 길은 참 예쁘고 편안하다. 대려마을로 들어가는 골목길에서 보리수 나무 두 그루에 빨간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주인 없는 보리수 나무에서 보리수 열매를 몇 개 따먹었는데 맛이 약간 쓰고 텁텁해서 내게는 맞지 않는다. 하지만 같이 간 한 뚜벅이는 어렸을 때부터 시골에서 자라면서 먹던 익숙한 맛이라 그런지 맛이 있다면서 한참을 즐긴다.
골목을 돌아서 마을로 들어 가니 이젠 오디 열매가 땅에 떨어져 길이 새까맣다. 위를 올려다 보니 까맣게 익은 오디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있다. 한참 동안 오디 열매를 따먹은 후 대려마을을 벗어나 산길로 올라가 금성산을 넘었다.
금성산을 넘어 마을을 내려와 칠다리를 건너니 오래된 마을 슈퍼가 하나 있다. 칠다리 삼거리에서 넓은 평야를 따라 걸어 서군산 산업단지를 거쳐 읍내 마을로 나와서 다시 길을 잃었다. 분명히 노란 리본을 보고 산업단지를 지나왔는데 삼거리 어디에도 가야할 방향을 가리키는 리본이 없다. 지도를 보며 은파호수공원과 가깝다고 생각되는 오른쪽 길로 걷다 보니 길이 막혀있다. 다시 돌아가야 하는데 날이 무덥고 바람도 없어 땡볕에 걷는 게 힘이 든다. 그래서 마을과 떨어져 있는 한적한 아스팔트 나무 그늘 아래 자리를 펴고 앉아 쉬기로 했다.
오늘은 주일이라 쉬는 김에 길에 앉아 셋이서 예배를 드리고 충분히 쉬었다. 구불길 안내지도를 보니 다음 목적지가 옥구 향교다. 카카오 맵을 보니 반대 방향으로 조금 더 가면 향교 가는 길이 나오는데 길을 탐색하러 갔던 한 뚜벅이가 리본을 못 보고 돌아와 다른 길을 택했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이 또한 아주 좋은 결정이었다. 덕분에 아무도 지나지 않는 길에서 조용히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다시 기운을 차리고 일어나 방향을 되돌려 옥구 향교로 가는 길로 들어서니 꽃길이다. 좁은 마을길을 넘어가니 옥구 서원으로 가기 전 한 집이 있다. 길가에 수도가 있길래 날씨가 더워 밭에서 일하시는 할머니에게 허락을 얻은 후, 손도 씻고 수건에 물도 적셨다. 대야에 담겨있는 손 씻은 물을 도로에 버려도 되냐고 물으니 할머니는 그냥 두면 새들도, 고양이도 와서 먹으니 그대로 두고 가란다. 할머니 생각이 참 깊으시다. 감사 인사를 드리고 서원을 지나니 바로 옥구 향교다.
여기서 구불 5길은 향교로 들어가서 왼쪽 길로 난 뒷산으로 올라 간다. 올라가는 길에는 솜다리가 지천으로 피어 있어 혹시라도 발로 밟을까봐 발걸음을 내딛기가 조심스럽다. 설악산 공룡 능선에서 본 그런 큰 솜다리는 아니지만 작고 예쁘다. 조심해서 산길을 올라가니 옥구 토성 반대편인 왼쪽으로 해서 척동마을로 내려가는 길인데 숲이 그늘이 지고 편편한 게 걷기 좋다. 여기도 토성인 것 같다. 이 길은 스위스 야콥스길을 걸을 때 브리엔쯔 호수 근처에 있는 유스호스텔을 찾아 가던 길과 느낌이 비슷했다.
척동 마을을 지나 고갯길에 있는 군부대 버스정거장을 지나다 보니 갑자기 우리가 길을 잘못 들어 쉬었던 곳을 넘어 오면 이 길일텐데 아마도 군부대로 막혀서 돌아 왔단 느낌이 든다. 조금 전 우리가 쉬던 곳에 연수원 같은 큰 건물과 넓은 주차장이 있었는데 이상하게 어디에도 이 장소를 안내하는 표시가 없었다.
그런데 군부대 버스정거장 지붕 위에도 오디가 새까맣게 열려 있다. 우리가 깜짝 놀라며 즐겁게 보고 있으니 버스를 기다리던 젊은 여자 둘이서 우리보고 따 먹고 가란다. 오늘은 길에서 오디를 충분히 따 먹었기에 더 따먹을 생각이 없다. 이런 날도 있다.
굴다리를 지나 언덕을 넘어 가니 드디어 우리가 점심으로 먹으려던 막국수 식당이 있다. 2주 전 군산 구불길을 걷고 서울로 올라가며 지인에게 구불길을 소개 했다. 그리고 이 지인은 지난 주에 내려와 구불 5길을 걷고 올라갔다. 이번에 여기 오기 전 구불 5길에 대해 잠깐 정보를 듣던 중에 이 분에게서 '이대가 식당'의 막국수와 떡갈비가 맜있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오늘 아침 도보를 시작하면서 단순하게 3시간 후면 점심을 먹겠거니 하고 같이 간 두 뚜벅이들에게 점심은 막국수와 떡갈비라고 하며 길을 재촉했다. 그런데 아침 8시 40분에 시작해 오후 2시 40분에 식당에 왔으니 여기까지 오는데 6시간 걸렸다. 물론 중간에 망개, 보리수와 오디 열매를 따먹느라 시간이 지체되긴 했지만 그래도 너무 오래 걸렸다. 식당에 들어가니 점심 시간이 지나 우리 밖에 손님이 없다. 바람도 없고 햇살이 뜨거워 더위에 지친 상태에서 시원한 막국수와 달달한 떡갈비를 먹고 나니 조금 기운이 난다.
식당을 나와 길을 건너니 바로 은파 호수공원이다. 잘 관리되고 있는 드넓은 호수 공원을 걸어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인 은파호수 공원 주차장에 도착하니 오후 3시 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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