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1일 (월), Rapperswil - Etzelpass- Einsiedeln, 16 Km, 6시간
아침 일찍, 어제 저녁에는 힘들어서 보지 못한 Rapperswill 대성당과 쮜리히 호숫가를 돌고 들어 왔다. 그 사이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아인지델른으로 떠났고 숙소에는 헬무트와 나만 둘이 남았다.
오늘은 갈 길이 비교적 짧아 여유가 있다. 헬무트가 미그로 슈퍼에 맛있는 빵이 있다고 해서 갔는데 시간이 일러 아직 안 나왔단다. 나는 간 김에 오늘 걸으며 먹을 과일과 빵을 산 후 숙소로 돌아왔다.
헬무트는 자기가 좋아하는 빵 나오는 시간에 미그로에 다시 가서 빵을 사서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오겠다고 해서 8시경에 나 먼저 아인지델른으로 출발~
Rapperswil의 유명한 나무 다리를 건너 강변을 따라 걷다 Pfäffikon 역을 지나니 까미노길에 coop이 있다. 괜히 Rapperswil에서 물건을 사서 한 시간이나 무겁게 짊어지고 왔다. Coop을 지나서부터 Ezelpass까지는 계속해서 오르막길이다. 겨우 540m 높이의 산길을 오르는데 경사도도 높고 쉼없이 계속 오르막길이라 힘이 배로 든다.
Ezelpass 가는 길이 너무 힘들어 중간에 숲속에 있는 나무 대피소에서 스위스 여자 순례자 2명과 함께 쉬면서 이른 점심을 먹었다. 친구 사이인 이들은 정년 퇴직을 한 후 함께 트레킹을 자주 다닌단다. 이들을 보니 나와 함께 6개월 전부터 이번 스위스 까미노를 계획했다 한 달 전 갑자기 위암 수술을 받아 함께 오지 못한 내 친구가 생각이 났다.
그 중 한 명이 쉬는 시간에도 공책에 뭔가를 열심히 써서 작가인가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나보고도 쓰라고 공책을 내민다. 무슨 공책이냐고 물으니 이 대피소에서 쉬고 간 사람들이 쓰는 방명록이란다. 그러면서 나보고 꼭 한국어로 써 달란다.
얼마 전 자기가 쓴 글이 한국어로 번역되었다고 책을 받았는데 무엇이 제목인지, 자기 이름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지만 자기에게 의미가 있다며 이 방명록에도 한글로 써 달라고 하기에 몇 자 글을 남겼더니 둘은 내가 쓴 글을 보며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면서 너무 좋아한다. 조금 후 또 다른 방문객이 와서 열심히 글을 남긴다. 참 재미있는 문화다.
점심을 먹고 조금 쉬고 나니 다시 기운이 생겨 힘겹게 Ezelpass에 도착해서 눈 앞에 보이는 Kapelle를 무시하고 그냥 고갯길을 넘어 가려는데 누군가 나를 부른다. 뒤돌아보니 나보다 늦게 떠난 헬무트다. 나보고 Kapelle에 올라가서 도장 받고 가란다.
Kapelle 올라 가는데 건너편 산 경치가 환상적이라 사진 먼저 찍고 Kapelle에 들어가 잠깐 기도를 한 후 순례자 수첩에 도장을 찍고 나왔다. 헬무트는 그때까지 나를 기다리며 쉬고 있다.
이제부터는 내리막 길이라 조금 쉽다. 둘이 길을 걸어 가는데 비가 오기 시작하더니 빗줄기가 조금씩 거세진다. 헬무트는 점심을 먹고 쉬고 싶다며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을 찾았지만 마땅히 쉴 곳이 없다. 할 수 없이 남의 집 주차장 처마 밑에서 점심 휴식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난 이른 점심을 먹은 터라 맛있게 점심을 먹으라고 헬무트에게 인사를 건넨 후 혼자 아인지델른을 향해 걸어갔다. 지붕 있는 돌다리를 건너 언덕을 올라 가다 보니 폐가 처마 밑에서 오전에 대피소에서 만났던 여자 순례자 둘이 비를 피하며 쉬고 있다.
서로 반갑게 인사만 나누고 헤어진 후 나는 다시 숲길을 지나고 농장을 넘어 아인지델른까지 1시간 10분 남았다는 표시를 보며 비를 맞으며 걸어 가고 있는데 Ezelpass를 오르며 만났던 스위스 청년이 말을 걸어 온다.
자기는 쮜리히에서 왔고 Rapperwil에 일을 보러 왔다가 걷는 것이 좋아 Einsiedeln까지 걸어 간단다. 이 청년은 지난 해 집에서부터 90일 동안 스페인 산티아고까지 걸었는데 겨울이라 엄청 힘들었단다. 이 청년과 같이 30분 정도 얘기를 하며 걸었는데도 여전히 길표시는 아인지델른가지 1시간 10분 남았단다. 우리 둘은 화도 나고 어이가 없어 서로 의아해하며 웃었다. 곧 이 청년은 미안해하며 스위스 사람들은 관대해서 그렇다고 해명을 한다.
빗줄기는 점점 거세지고 갈길은 여전히 멀고 힘들다. 이 청년은 자기가 너무 추워서 먼저 빨리 걸어야겠다며 미안해하며 양해를 구한다. 작별 인사를 한 후 이 청년은 엄청 빨리 내 눈 앞에서 사라졌다. (이 청년은 비가 올 줄 몰라 운동화에 얇은 잠바 차림으로 트레킹을 시작했는데 중간에 비가 세게 와 옷이 다 젖었으니 얼마나 추웠을까...)
나는 Ezelpass를 오를 때부터 발바닥에 물집이 생긴 것 같았는데 조금 더 심해 진 것 같아 더 빨리 걸을 수는 없고 내 속도대로 열심히 걸은 결과 드디어 아인지델른 대성당 근처 사거리에 도착했다. 표지판을 보니 내가 묶을 숙소는 대성당 쪽이 아니라 왼쪽으로 가란다.
빗길에 걷느라 몸도 피곤한데 더 걸어야 한다니... 대성당 수도원 숙소를 예약하지 않은 걸 후회하며 지친 발을 이끌고 15분 정도 걸어 가니 드디어 숙소가 나타난다. 오후 2시경이라 체크인이 어려울까 고민했는데 즉시 방 열쇠를 준다.
까미노 길을 벗어나 15분간 걸어 들어올 때는 멀다고 불평했지만 방에 들어가니 걷느라 피곤한 몸과 다리를 쉬게 하기 위해 수도원 숙소가 아닌 조용하고 시설이 잘 갖추어진 Pilgerhaus Allegro (SJBZ)를 예약하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보니 이 숙소 바로 옆에도 까미노 길 표시가 있다.)
일단 짐을 풀고 씻고 난 후 한잠 자고 일어나니 오후 6시 30분이다. 저녁 식사 시간이라 식당으로 내려가니 나와 한 할아버지 손님 둘뿐이다. 식당에서 일하시는 여자분은 정말 친절하고 편안하게 투숙객들을 잘 배려해 음식을 가져다주어 음식도 맛있었지만 즐겁게 저녁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이 분은 오늘 아침 6시 반부터 저녁까지 일을 했기 때문에 내일은 하루 쉰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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