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4일 (목), Bethanien - Flueeli-Ranft - Lungern, 23Km, 9시간
잘 자고 아침에 일어나니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다. 어젯밤에 발바닥 물집을 치료한 효과가 있는지 죽을 것 같이 아팠던 발바닥 물집의 크기도, 통증도 많이 줄어들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 발바닥 물집이 가라 앉지 않았으면 이곳에서 하루 더 머물 생각이었지만 다행히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아침 7시 반에 아침을 먹고 짐을 챙겨 체크아웃을 하러 나가니 신부님이 발의 물집은 괜찮은지 친절하게 물어보신다. 훨씬 좋아 졌다고 감사 인사를 드리고 숙박비를 지불한 후 룽에른을 향해 출발~
한참을 걸어 가다 St. Niklausen 성당으로 가는 길이 두 갈래로 갈려 나는 윗길을 택해 걸어갔더니 엄청 돌아서 간다. 가톨릭교도들의 성지인 Flueeli는 생각보다 규모가 작아 조금 놀랐다.
Flueeli-Ranft를 지나 Sachseln으로 가는 길은 계속 내리막길이다. 길을 가다 만난 한 여자 도보 여행객과는 좁은 시골길에 서서 한참을 얘기를 했다. 이 도보 여행객은 Flueeli-Ranft에 가는 길인데 어제는 비가 와서 쉬었단다. 그저께는 아펜젤러에 다녀 온 이 스위스 아주머니의 취미는 트레킹이다. 자연 속에 있어야 마음이 편안하단다. 나와 비슷하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서로 통하는 것이 있어 이야기 하기가 편하다. 우린 서로에게 잘 걸으라고 인사를 건네고 서로의 목적지를 향해 반대 방향으로 길을 떠났다.
Sachseln의 도보길은 대부분 왼쪽에는 기찻길, 오른쪽은 자르너 호숫가이다. 가는 길에 잠시 호숫가에 배낭을 내려 놓고 발을 물에 담구니 피곤하고 뜨거웠던 발이 너무 시원하고 좋다.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한동안 쉬었다가 다음 목적지인 Giswil을 향해 걸었다.
Giswil에 도착하니 coop이 있다. 스위스 까미노 길은 주로 시골 마을을 지나기 때문에 수퍼를 찾기 힘들다. 그래서 수퍼가 눈에 보이면 무조건 들어가서 비상용으로 먹을 것을 조금씩 사는 버릇이 생겼다. 이곳 coop에서는 바나나 1개, 천도 복숭아 1개, 작은 케잌 1개 그리고 요구르트 1개를 샀다.
Giswil에서 Lungern 호수로 가려면 낮은 산을 넘어야 한다. 고갯길 풍광 좋은 곳에 앉아 내가 걸어 온 Giswil을 보며 오늘 묶게 될 숙소에 전화를 걸었다. 민박집 아주머니에게 저녁 7시 경에 도착할 것 같고, 발 물집으로 통증이 심해 식당에 가기 힘들 것 같은데 혹시 저녁을 해 주실 수 있냐고 물으니 아주머니는 일하러 가야해서 안 된단다. 그러면서 상점이 6시 반에 문을 닫으니 빨리 와서 먹을 것을 사야 될 거라고 알려 주신다.
그 말씀을 듣고 저녁을 굶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깜짝 놀라 쉬던 것을 멈추고 짐을 챙겨 부지런히 걸었다. 이곳부터 쉬지 않고 빨리 걸어도 한 시간이나 걸릴 텐데 걱정이다.
기찻길을 건너 조금 더 걸어가니 룽게른 호수가 눈에 들어오는데 물색이 환상적이다. 하지만 풍경을 즐길 여유가 없다. 찌릿찌릿한 통증을 참아가며 부지런히 걸은 결과 룽에른 민박집 근처에 도착하니 6시 15분이다. 9시간을 걸은 결과 발바닥에서 불이 난다. 그런데 눈 앞에 Kiosk가 근처에 있다는 표시가 눈에 들어온다. 정원을 가꾸시는 할머니에게 Kiosk가 있는 곳을 물어 찾아가니 목요일 오후는 상점을 닫는다고 쓰여있다.
보통 목요일에는 늦게까지 상점을 열기도 하는데 오전만 상점을 연다는 안내판을 보니 기가 막힌다. 너무 힘들어 마을까지 걸어가 먹을 것을 사 올 기력은 없고 할 수 없이 Maps.Me 지도를 보며 민박집을 찾아갔다.
민박집 문 앞에서 주소를 확인하려고 하니 아주머니가 어서 오라며 반갑게 맞아 주신다. 내가 상점이 문을 닫아 먹을 것을 사지 못했다니 본인도 전화를 끊고 나서야 동네 상점이 오후에 문을 닫는 다는 것이 생각났단다. 그러면서 아주머니는 인스탄트 크노르 스프와 빵과 살라미를 가져다 줄테니 그거라도 먹으라고 하신다. 이런 상황에서는 그저 감사할 뿐이다.
이후 방을 소개하는데 거름 냄새가 나는 창고 이층을 가리킨다. 숙소는 이층에 있고 샤워실과 화장실은 마당을 지나 주인집 지하실에 있단다. 아이고, 한숨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이 저녁에 피곤한 발을 끌고 다른 숙소를 구하러 갈 수는 없고 할 수 없이 아주머니의 안내를 따라 나무 계단을 올라 이층방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외부에서 보는 것과 다르게 숙소는 아늑하다. 방에 들어 가니 아주머니는 우선 본인이 만든 Holunder 시럽을 타서 갈증을 해소시키라고 권하신다. Holunder 시럽은 자극적이지 않고 아주 맛이 있었다.
안내를 하시면서 조그만 아이스박스에 낼 먹을 아침이 준비되어 있다고 알려 주신다. 숙박계를 쓴 후 방 사용 설명을 해 주시고는 잠깐 나가시더니 저녁으로 바게트 빵 반 덩어리, 크노르 버섯 스프 1통, 그리고 Salami 한 덩어리를 가져다주신다. 무뚝뚝해 보이셔도 맘은 따뜻한 분이시다.
나는 이 저녁에 일을 하러 가신다는 아주머니가 궁금해서 시골에 공장도 없는데 어디로 일하러 가냐고 물으니 자기네 농장 소를 지키러 산으로 올라 갔다 낼 아침 9시에 내려올 거란다. 그래서 아이스박스에 아침을 두고 가는 거란다.
80세 시어머니, 남편과 함께 사시는 이 아주머니는 하루 종일 집안 일을 하고 밤에 또 산에 올라가 일하면 힘이 안 드시냐고 물으니 웃으시면서 괜찮으시 단다. 체력이 대단하신 분이다.
혹시 낼 아침에 못 뵙고 떠날 지 몰라 방을 나가시는 아주머니에게 미리 작별 인사를 해 두었다.
손님용 샤워실과 화장실이 주인집 지하실에 있지만 시설은 아주 좋고 깨끗했다. 밤에 화장실 갈 때 쓰라고 방에는 손전등을 마련해 두었고 계단을 내려 가는 길에는 위험할까 봐 크리스마스 트리용 전등을 설치해 두었다.
오늘도 침대가 세 개 있는 방에서 혼자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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